세계 역사의 숨겨진 영웅! 직지를 알려요!

당신은 흑인 인권 운동하면 어떤 영웅과 어떤 이야기가 떠오르나요?

아마 당신은 “마틴 루터킹”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고 지금도 20세기 세계 역사에 가장 위대한 연설이라고 꼽히는 1963년 8월 28년도에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했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이 떠오를 것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조지아주의 붉은 언덕에서 노예의 후손들과 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손을 맞잡고 나란히 앉게 되는 꿈이,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네 아들딸이 피부색이 아닌, 그 속 됨됨이로 판정을 받는 나라에서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이라는 꿈. 오늘 나에게는 그런 꿈이 있습니다!

이 연설을 통해 마틴 루터킹은 전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흑인 인권 운동가가 되었습니다. 흑인들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최고 지도자였던 마틴 루터킹은 노력으로 그는 200여 년간 넘게 미국 사회에 보이지 않게 지속되어 온 인종차별 문제를 제도적으로 폐지했고

이러한 그의 헌신과 노력으로 그는 35세의 나이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마틴 루터킹”이 아닌 “로자 파크스“라는 한 흑인 여성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있나요? 이 이야기는 미국의 몽고메리시에서 실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1955년 12월 1일 목요일 오후 6시 “로자 파크스”라는 이름의 한 흑인 여성이 버스에 탔습니다. 이 여성은 당당하게 버스비를 내고 빈 의자에 앉았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버스의 좌석은 어느덧 빈 자리가 없이 꽉 찼습니다. 이때 한 정거장에서 백인 승객들이 차에 올랐습니다. 백인 승객들이 좌석이 없어 버스에 서 있게 되자 버스 기사는 이 흑인 여성에게 말했습니다. 이 버스 기사도 백인이었습니다. “이봐! 당신! 자리를 비켜줘야겠어.” 버스 기사는 이 흑인 여성이 좌석에서 일어나 백인 승객에게 좌석을 양보할 것을 당당하게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이 여성은 말했습니다.

“싫습니다. 이 자리는 제 자리입니다.”

그러자 버스 기사는 버스를 멈추고 경찰을 불렀습니다. 경찰은 이 흑인 여성을 기소했고, 몽고메리시는 이 여성에게 벌금 10달러와 소송 비용 4만 달러를 내게 했습니다. 이 흑인 여성이 위반한 법은 바로 “흑백인종 분리법”입니다.

“흑백인종 분리법”이란 1900년 몽고메리시에서 버스 좌석에서 흑인 석, 백인석을 구분하지 않게 하는 법이고, 더 나아가 버스 기사가 흑인 승객에게 자리를 일어나게 명령하면 반드시 따르도록 한 법이었습니다. 1900년에 이 법이 처음 제정된 후 55년이 지나는 시간 동안 이 부당한 법을 흑인들은 바꾸고 싶었지만, 바꿀 힘이 없었습니다. 수많은 흑인들은 버스에서 강제로 고발당한 이 흑인 여성의 이야기에 분노했지만, 그 누구도 이 거대한 흑인 차별법 앞에서 이 흑인 여성을 구할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이때 26세의 한 흑인 청년이 등장했습니다.

이 청년은 행정력을 가진 공무원도, 재력이 있는 기업가도, 권력을 가진 국회의원도 아니었습니다. 이 청년의 이름은 “마틴 루터킹” 이었습니다. 이 청년은 모든 흑인 청년들에게 한가지 운동을 제안했습니다. “흑인을 차별하는 모든 버스에 대한 승차 거부를 합시다.”

이 청년의 제안에, 흑인들은 하나둘씩 동참하기 시작했습니다.

흑인들은 일터까지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가기 시작했으며 흑인들끼리 모여 버스를 타지 않고 함께 차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흑인 택시들은 비싼 택시비용을 버스만큼만 받으며 이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이 청년이 시작한 버스 타지 않기 운동은 1년이 넘게 무려 381일간 지속됩니다. 누군가는 직장을 잃고, 누군가는 살인 협박을 받고, 또 누군가는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렇지만 흑인들은 절대 멈추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1956년 11월 3일 미국 연방 대법원은 흑인석과 백인석을 나누는 것이 위헌이라고 판시했고. 버스와 공공장소, 식당, 화장실에서의 흑인 차별 법안이 폐지됐습니다. 그리고 흑인이 당당하게 버스와 호텔, 식당 등에서 백인과 동등하게 대접받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은 흑인 인권운동의 기적을 가능하게 한 주인공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고 나에게는 꿈이 있다는 연설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흑인 인권운동의 최고 지도자 마틴 루터킹을 기억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을 오늘날 세계인들의 가슴속에 마틴 루터킹을 있게 한 것은, 바로 버스에서 당당히 자리를 지킨 “로자 파크스”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세계 역사를 바꾼 “금속활자” 하면 어떤 나라와 누가 떠오르나요?

수많은 세계인들은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으로 “금속활자”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금속활자 인쇄술을 통해 당시 권력자들만 소유했던 지식과 정보를 대중들에게 널리 전파하여 르네상스, 종교개혁, 산업혁명, 시민혁명을 일으켰고, 이는 세계 역사에 혁명적 변화를 일으킨 업적으로 평가받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1997년 미국 ‘라이프’지 특집기사 지난 1,000년 동안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100대 사건 및 인물에 금속활자인쇄술 발명과 이 일을 해낸 역사의 주인공으로 독일의 요하네스 구텐베르크를 선정했습니다. 타임지뿐만 아니라 BBC, 월스트리트 저널, 워싱턴 포스트 또한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으로 금속활자 인쇄술을 선정하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직 세계인들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를 있게 한 “직지” 에 대해 잘 모르고 있습니다. “직지”는 세계인이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으로 알고 있는 독일 구텐베르크 42행 성서가 발행된 1455년보다 무려 78년이나 앞서 1377년도에 제작되었고, 2001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또한, 직지는 일본 등 다른 아시아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 나라의 동활자와 목활자 인쇄법을 전달받았다.”

-16c 일본의 시경경기 권학문-

아시아와 문화역사에 많은 영향을 준 직지

하지만 한국의 금속활자 기술이 최초인 것은 인정하더라도 구테베르크의 것보다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다. 이는 “한국의 금속활자기술이 세계최초임을 인정하지만, 구텐베르크처럼 세계 역사에 중대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해 큰 의미가 없다.”라고 직지의 세계사적 가치를 무시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이는 유명하지 않거나, 세상에서 큰 영향력이 없다면 가치가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직지는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가 있습니다. 한국의 인쇄역사가 이를 증명합니다. 한국은 704년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물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시작으로 500년 뒤 1377년에 금속활자본으로 직지를 인쇄한 문화 대국입니다. 무구정광다라니경에서 직지까지 축적된 500년의 활자 인쇄 기술은 한국역사에서 위대한 자산입니다. 무엇보다 일찍부터 목판활자와 금속활자로 책을 인쇄했다는 것은 한국역사가 뛰어난 문화를 지녀온 문화민족임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또한, 구텐베르크가 한국의 활자기술에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생기고 있습니다. 이들은 오랜 시간 축적된 기술로만 만들어낼 수 있었던 금속활자기술을 구텐베르크가 10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만들어낼 수 없으며, 따라서 실크로드를 통해 유럽과 세계로 확장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2005년 서울디지털포럼에서 전 미국 부통령 앨 고어 연설을 말했습니다.

서양에서는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는 당시 교황 사절단이 한국을 방문한 이후 얻어온 기술이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스위스의 인쇄박물관에서 알게 되었다. 그 사절단은 한국을 방문하고 한국의 여러 가지 인쇄기술기록을 가져온 구텐베르크의 친구였다.

“로자 파크스” vs “마틴 루터킹” 그리고 “직지” vs “로자 파크스”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틴 루터킹”이 있기까지 알려지지 않은 “로자 파크스”라는 흑인 여성이 큰 기여를 했습니다. “로자 파크스”라는 용기 있는 한 흑인 여성이 없었다면 “마틴 루터킹” 또한 평범한 한 흑인 남성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로자 파크스”라는 한 용기 있는 한 흑인 여성의 행동이 있었기에 “마틴 루터킹”이 세계적인 흑인 인권 운동가가 될 수 있었고, ‘나에게는 꿈이 있어요’라는 연설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희망의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아직 세계인들에게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세계역사책 속에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지만 “직지” 또한 충분한 가치와 세계사적 의의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한국문화유산 홍보대사로서 세계 역사의 숨겨진 영웅! 직지를 세계의 친구들에게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