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창조적 문화를 세계인들에게 이야기하며 직지를 알려요!
“러시아인인 저는 금속활자를 한국이 가장 먼저 만들었다는 역사를 전혀 몰랐어요. 이건 정말 대단하고 흥미진진한 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최고의 발명은 독일, 프랑스, 영국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잖아요.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걸 한국에 와서 알았습니다. 저는 한국의 금속활자 기술 창조와 직지는 세계 역사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러시아 우파항공기술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발리에바 디아나 –
“영국인으로서 한국이 금속활자 기술을 창조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금속활자의 발명은 세계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인데 왜 세계인들은 유럽의 구텐베르크만 알고 직지는 잘 모르는지 안타깝습니다.
– 영국 하트퍼드셔대 4학년생 캐롤라인 선드버그 다우니 –
위의 영국과 러시아 대학생처럼 전세계 젊은이들은 K-POP과 같은 한국의 대중문화는 잘 알고 있지만, 한국역사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있습니다. 잘 모르는 것뿐만 아니라 한국역사에 대한 왜곡된 편견을 가지고 있는 부분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전세계 청소년들이 보는 세계사 교과서에는 한국의 전체 역사와 문화를 중국으로부터 오랜 지배 및 영향을 받아 독자적이고 주체적인 문화발전과 창조가 없는 것처럼 기술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외국 교과서에는 중국과 일본의 도움 없이는 한국인 스스로는 역사를 만들거나 문화를 창조할 수 없는 것처럼 한국역사가 왜곡되어 서술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외국 교과서에 편향된 한국역사를 바꿀 수 있을까요? 한국의 유구한 역사 중에서 어떤 부분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할까요? 이를 위해서는 한국역사 중에서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기록유산인 직지와 같은 창조적 문화유산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한국이 이웃 나라와 교류를 하면서 서로 문화적 영향을 주고받았지만, 문화를 일방적으로 수용만 하는 종속적인 나라가 아니라 문화를 창조적으로 발전시켜 독자적인 문화를 만든 사례, 한국의 전체 역사가 은둔의 역사가 아니었음을 보여주고 국제교류를 활발히 한 사례, 주변 나라에 영향을 준 사례를 적극적으로 세계에 알려 나가야 합니다.
직지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직지는 세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발명품 중에 하나라고 인정받는 “금속활자 기술”로 만들어진 책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미주와 유럽 등 서양인들에게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78년보다 앞서 금속활자 기술로 인쇄된 책인 직지에 관해 이야기하면 큰 호기심을 보입니다.
반크는 직지와 같이 전세계 역사 교육학자와 초중고교 교사들에게 호기심과 감동, 찬란한 한국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문화유산을 선정해 전세계에 홍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세계의 친구들에게 한국의 창조적 문화유산을 적극적으로 알려주세요.
여러분은 혹시 아시나요? 서양의 관점에서 인류 역사를 바꾼 위대한 발명이라 평가받는 금속활자기술을 최초로 만든 나라가 한국역사 속에 있다는 사실을!
미국의 유명 잡지사인 타임에서 발행한 ‘더 라이프 밀레니엄(The Life Millennium)’라는 책에서 지난 천 년 동안 세계를 변화시킨 100건의 사건 중 금속활자인쇄 발명을 가장 위대한 발명으로 꼽았습니다. 또한, 미주와 유럽에서 발행되는 수많은 세계사 교과서에는 1455년도에 발행된 구텐베르크 성서를 인류 역사의 중요한 사건으로 조명해 비중 있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서양의 관점에서 금속활자 인쇄술을 위대하다고 평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금속활자 인쇄술을 통해 정보의 대량 인쇄와 보급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이를 통해 서양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르네상스, 종교개혁, 산업혁명, 시민혁명 등을 일어나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서양인들이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서양 역사에서 위대한 발명이라 손꼽히는 금속활자기술을 인류 역사에 최초로 발명한 나라가 바로 한국역사 속 고려라는 사실입니다. 한국의 오랜 역사책인 ‘동국이상국집’에는 고려 시대인 1234년도에 ‘상정고금예문’이라는 책을 금속활자기술로 발행되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는 1455년도에 금속활자기술로 인쇄된 유럽의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약 200년 넘게 앞선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상정고금예문’은 기록상으로만 존재하고 실물로 전해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1972년에 프랑스 파리의 국립도서관에서 고려 시대 금속활자기술로 인쇄된 “직지”가 세상에 나타났습니다. 당시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의 특별연구원으로 일하던 박병선 씨가 도서관에서 한국 관련 자료를 분류하는 작업을 하다가 ‘직지’를 발견한 것입니다. 직지 책 안엔 이 책이 고려 시대인 1377년에 금속활자로 발행이 되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를 통해 한국이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기술로 책을 인쇄한 나라라는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2001년 9월 유네스코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인 ‘직지’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습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역대 세계기록유산 가운데 해당 국가에서 소유하고 있지 않은데도 선정된 유산은 직지가 유일합니다. 1455년 인쇄된 독일의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78년 앞서 1377년도에 인쇄된 고려의 직지를 통해 학자들은 당시 고려의 금속활자기술이 중국을 거쳐 유럽으로 전해질 수 있었을 거란 추측을 하기도 합니다. 또한, 한국역사 속 활자 인쇄술은 중국과 일본에도 전해졌으며 특히 일본의 역사책인 ‘시경 경기’에는 한국에서 가져간 동활자를 당시 일본 왕에게 바쳤고 이 기술을 사용하여 책을 발행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인류 역사를 바꾼 위대한 발명 금속활자기술! 아직 세계인들은 독일 구텐베르크의 존재만 알고 있을 뿐 고려 직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Movable Metal Type Printing Technology, the Drive for Historical Change
Did you know Korea made an invention that changed the world?
Life Magazine’s millennium special issue, published by Time, listed the invention of the printing press in the top 100 events that changed the world in the last millennium. And many world history books published in North America and Europe devote major coverage to the printing of the Gutenberg Bible in the 1450s. Why is the printing press historically so significant? It is because the invention of movable metal type enabled mass printing and the spread of knowledge, leading to the Renaissance, the Reformation, the Civil Revolution, and the Industrial Revolution. However, there is another fact that many westerners are unaware of. The country that invented movable metal type was actually the Korean kingdom of Goryeo (918-1392).
A historical text, Dongguk Yisang Gukjip (Collected Works of Minister Yi of Goryeo), mentions that Sangjeong Gogeum Yemun, a 50-volume series of books about rituals, was printed in 1234 with movable metal type. That is over 200 years earlier than the printing of the Gutenberg Bible in 1455. Unfortunately, Sangjeong Gogeum Yemun has not been found. However, Goryeo’s Jikji, the oldest extant book printed with movable metal type, was found at the National Library of France in 1972.
Dr. Park Byeongseon, who worked as a librarian at the library, came across Jikji mixed with unsorted documents. Inside the book, it was clearly indicated that Jikji was printed with movable metal type in 1377. Jikji proved that Korea was indeed the first country to use movable metal type for printing. In September of 2001, UNESCO inscribed Jikji on the Memory of the World Register. Jikji is the only UNESCO world heritage artifact that is not in the country of register. Jikji was printed in 1377, which is 78 years earlier than the printing of the Gutenberg Bible. Researchers suspect that Goryeo’s movable metal type printing technology was spread to Europe through China. Korea’s printing technology was spread to China and Japan. There is a record in a Japanese document, Tokiyoshi Kyoki, that Joseon’s movable copper type was brought to Japan and used to print books. Although it is lesser known than Gutenberg’s printing press, Korea’s printing technology made a significant impact on world history.
여러분 혹시 알고 계시나요? 한국의 역사에는 고인돌의 나라가 있었다는 사실을!
유네스코는 2000년 12월 한국의 화순과 고창, 강화도의 고인돌 유적을 세계 유산으로 지정했습니다. 한국은 전세계 고인돌의 40% 이상이 있어 고인돌의 나라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직 세계인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한국의 고인돌에는 현대 과학자들도 놀랄 정도의 정확한 별자리가 새겨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천문도가 새겨진 고인돌은 한국의 고대 역사인 고조선의 대표 유물이며 북한의 평양, 한국의 충청북도 등 곳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특히 1978년에 한국의 충청북도 청원군의 고인돌 유적에서 작은 돌판이 발견되었는데 이 돌판에는 65개의 작은 홈이 파여 있었습니다. 학자들이 조사한 결과 이것은 기원전 500년경의 천문도로 북두칠성, 작은곰자리, 용자리, 카시오페이아자리 등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천문도가 중요한 이유는 천문도가 당시의 최첨단 과학기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세계적 문명이라 인정받는 이유는 천문도가 이 지역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고인돌에 새겨진 천문도는 기원전 1200년경 하늘을 관찰했음을 보여주는 바빌로니아 토지 경계비보다 1800년 앞선 기원전 3천 년 경의 유물입니다.
A Country of Dolmens! People Who Drew a Star Chart
Did you know Korea has the largest concentration of dolmens (stone tombs shaped similarly to tables) in the world?
UNESCO designated the Gochang, Hwasun, and Ganghwa dolmen sites in Korea as World Heritage Sites in December of 2000. Korea is called a country of dolmens because it accounts for 40% of the world’s dolmens. There is another fact that people don’t know about. Some of the dolmens found in Korea contain astronomical engravings that show surprisingly accurate constellations. Dolmens engraved with star charts are found in Pyeongyang in North Korea and Chungcheongbukdo Province in South Korea. These dolmens are important relics from the ancient Korean kingdom of Gojoseon (2333-108 B.C.).
In 1978, an interesting stone slab was found in a dolmen site in the town of Cheongwon in Chungchengbukdo Province. The slab had 65 holes of various sizes engraved on it. Researchers found that the holes represent the Big
Dipper, the Little Bear, the Dragon, and Cassiopeia, showing the sky around 500 B.C. Ancient star charts have historical significance because they reflect the level of science at the time. Star charts comprise important evidence for the civilization of ancient Egypt and Mesopotamia. A stone slab found in North Korea contains a star chart that shows the sky around 3000 B.C. It precedes the star chart on the ancient Babylonian boundary stone that shows the sky around 1200 B.C.
여러분 혹시 알고 계시나요? 한국의 역사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고대 청동거울이 있다는 사실을!
21세기 한국은 세계 최고수준의 반도체 제조국입니다. 한국의 세계 1위의 반도체 기술은 보유하게 된 건 우연이 아닙니다. 오늘날 세계적인 반도체 회사인 삼성전자가 한국의 경기도 용인시 기흥에 반도체 공장을 지으려고 땅을 팠더니 고대 청동거울을 제조하는 형틀 공장이 발견되었습니다. 여기서 발견된 형틀 공장에서 제조된 것이 바로 대한민국 국보 제141호인 고대 청동거울 “다뉴세문경”입니다.
‘잔무늬거울’이라고도 불리는 이 청동거울은 기원전 4세기 무렵 제작된 것으로 직경 21.2㎝의 뒷면에 0.03㎜의 동심원이 1만3300여 개나 그려져 있습니다. 선의 굵기와 간격 모두 마이크론 단위로 오늘날 첨단과학기술로도 만들 수 없을 정도로 초정밀 기술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확대경은 16세기에 유럽에서 처음 발명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기원전 4세기경에 한국의 역사 속 고조선 시대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기술로 초정밀 청동거울을 만들었을까요?
이 고대 청동거울 “다뉴세문경”을 통해 한국역사 속 고조선 시대에 21세기 한국의 반도체만큼 세계 최고수준의 기술이 있었음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People Who Made the World Class Bronze Mirror
Did you know Korea has an ancient bronze mirror with incredibly precise patterns?
Korea is one of the leading providers of semiconductors in the world and is leading the global semiconductor technology in the 21st century. Samsung Electronics, the global semiconductor leader, found an ancient mold for bronze casting during its ground preparation for a semiconductor plant in the city of Yongin in Gyeonggido Province.
This mold was used to cast bronze mirrors like Korean National Treasure #141 Danyusemungyeong (bronze mirror with fine geometric patterns). The ancient mirror, also known as a fine-lined mirror, was cast around 4 B.C. The rear of the 8.3-inch-diameter mirror is adorned with 13,300 concentric circles of 0.001 inches. The lines are in micron size, which is difficult to replicate even with today’s nanotechnology.
The microscope was invented in the late 16th century in Europe. It is a mystery how the people of Gojoseon (2333-108 B.C.) cast such microscopic lines on the mirror in the prehistoric period. The ancient bronze mirror shows evidence of the advanced scientific technology that the first Korean kingdom of Gojoseon possessed.
여러분은 혹시 알고 계시나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대 금관을 보유한 나라가 한국역사 속에 있다는 사실을!
현재까지 전세계에서 발견된 13점의 고대 금관 중 7점이 한국의 역사 속 왕국인 신라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이유로 신라를 세계적인 고대 금관 종주국이자 금관 왕국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신라 금관에는 어떤 의미가 있고, 신라에는 왜 이렇게 많은 금관이 있을까요?
신라 금관의 장식은 사슴의 뿔, 나뭇가지 모양을 닮았습니다. 고대인들은 나무를 하늘을 향하는 길, 사슴은 하늘을 인도하는 전령사라 생각했습니다. 또한, 신라 금관의 재료인 금은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라 금관이 신라왕의 무덤에서 발견되었음을 추측해볼 때 혹시 금관의 주인인 신라 왕은 죽어서까지 영원히 신라 백성을 지키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었을까요?
중국왕조 평균이 150년이듯이 세계 역사에서 1천 년이나 지속된 왕조를 찾는 것은 힘이 듭니다.
어쩌면 신라가 세계 왕조 역사에는 보기 드물게 1천 년 동안 지속되어 천년 왕국이라 불리는 이유는 죽어서까지 백성을 지키고 사랑하고자 했던 신라 왕들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천년 왕국 신라의 꿈이 바로 신라의 금관에 숨겨져 있습니다.
A Country of a Millennium Kingdom and Gold Crowns
Did you know Korea has the largest number of ancient gold crowns in the world?
Among the 13 ancient gold crowns found around the world, seven are from the ancient Korean kingdom of Silla (57 B.C.-A.D. 935). For this reason, Silla is also known as the kingdom of gold crowns. Silla is considered the ancient leader in gold crown production. What did gold crowns mean to the people of Silla? The Silla crowns are embellished with ornaments that resemble deer antlers and tree branches. Ancient Silla people saw the deer as a messenger of heaven and trees as pathways to heaven. Gold signifies eternity.
Given that the gold crowns were found in the tombs of the kings, they may symbolize Silla kings’ determination to protect the people even after death. The average length of a Chinese dynasty is 150 years. It is rare to find a dynasty that lasted for a millennium. Silla kings’ dedication to the people might have been the drive for the kingdom’s longevity. Silla’s gold crowns represent the legacy of the millennium kingdom.
여러분은 혹시 알고 계시나요? 한국 경주지역의 작은 무덤에서 기원후 6세기 로마의 최고 장인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황금 보검이 발견되었습니다.
한국의 보물 635호로 지정된 이 보검은 경주 계림로 보검으로 전세계에 발견된 고대 보검 중에서 가장 온전하게 아름답게 남아있어 세계에서 가장 진귀한 황금 보검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 황금 보검은 전체 길이 36㎝, 최대폭 9.3 센티미터로 되어있으며 황금과 보석으로 전체 보검이 치장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황금 보검이 로마의 최고 장인이 만든 것으로 추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보검에는 그리스 로마 시대에 유행한 이른바 그리스 소용돌이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지중해 지방에서 볼 수 있는 월계수 잎이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동부 유럽에서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이 황금 보검이 왜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한국의 경주의 작은 무덤에서 발견되었을까요? 동유럽과 신라는 과연 어떤 관계였을까요? 신라는 고대 아랍국가 사이에 황금의 나라라고 불렸습니다. 아랍지역의 책에 신라가 천국처럼 묘사가 되고, 고대왕국 신라의 수도인 한국의 경주에는 아랍지역의 얼굴을 형태를 띤 사랑이 등장하는 유물이 많이 발견됩니다.
어쩌면 한국의 고대왕국 신라의 작은 무덤에서 로마 최고의 진귀한 보물인 황금 보검이 발견된 이유는 당시 신라는 세계인이 동경한 국제화되고 열린 왕국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요?
A Country of Dazzling Gold Artifacts
Did you know Korea has world-class ancient gold artifacts?
An ornate gold dagger was excavated from a small tomb on Gyerim Street in the city of Gyeongju, Korea. The dagger appeared to be crafted by a master goldsmith in Rome around 6 A.D. Designated as Korean Treasure #635, this dagger is considered one of the world’s most precious ancient daggers because of its exquisite design and impeccable condition. It is 14-inches long and 3.7-inches wide at its thickest part and is embellished with a large quantity of precious garnets.
This dagger is presumed to be made by a Roman goldsmith because it is adorned with an ancient Greek spiral and Mediterranean laurel patterns. How did a dagger made in Eastern Europe end up in Korea? No other dagger of this kind was found in East Asia. Could it be evidence of exchange between Silla and Europe? As a matter of fact, Silla (57 B.C.-A.D. 935) was known as a country of gold in the ancient Arab world. Silla was described as a heaven in ancient Arabic books. And Silla left many relics that resemble the faces of the Arabic in its capital of Gyeongju. The dagger found in the tomb in Gyeongju may indicate that Silla was an open and international kingdom.
여러분은 혹시 아시나요? 한국역사 속 보물 중에 서양보다 천년이나 앞선 기술로 제작된 신비스러운 향로가 있습니다.
신약성서에 예수가 탄생할 때 동방박사가 향로를 선물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듯이, 고대 한국역사 속에서도 신비스러운 향로가 등장합니다. 1993년 12월, 한국의 충청남도 부여지역에서 무려 1400여 년 동안 진흙 속에 있었던 한 향로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이 향로를 통해 한국 고대 역사 속에서 700년 동안 지속된 왕조인 백제의 찬란함이 세상에 드러날 수 있었습니다.
이 향로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향로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이유는 보통의 향로는 높이 20㎝ 이내이지만, 이 금동대향로는 높이가 보통 향로의 2배 이상인 61.8㎝이며 무게 11.8㎏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이 향로는 백제의 문화와 과학기술 수준이 동시대 세계 최고수준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향로는 용 한 마리가 연꽃 봉오리를 물고 있는 듯한 모습에 산봉우리, 동식물, 사람 등 무려 160개의 형상이 향로에 빈틈없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향로에서 보이는 160개의 형상이 뭉개지거나 깨짐 없이 세밀한 모양으로 주조된 건 백제가 당대 최고의 첨단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 고도의 기술은 서양보다 천년이나 앞선 기술인 “수은아말감법”으로 수은과 금을 섞어 모양 만들고 가열한 후, 수은을 증발시켜 금만 남기는 기술로 오늘날의 과학기술로도 재현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당대 최고의 걸작인 이 위대한 향로를 만든 백제는 과연 어떤 나라였을까요?
한국의 역사를 소개하는 한국의 오랜 역사책 삼국사기에는 백제를 소개하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검이불로 화이불치, 이 말은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라는 의미입니다.
Incense Burner Made with Leading Technology
Did you know Korea has an ancient incense burner made with world-class technology?
In the New Testament, there is a story about the Wise Men who gave Jesus the gift of incense. Korea has a 1400-year-old incense burner. A gilt-bronze incense burner was excavated in the town of Buyeo in Chungcheongnamdo Province in December of 1993. The incense burner revealed the level of art in Baekje (18 B.C.?A.D. 660), a Korean kingdom that lasted for about 700 years. It is over 24-inches high, three times higher than an average incense burner. And it weights 26 lbs. It is the largest ancient incense burner in East Asia. It is evidence of Baekje’s high level of art and science.
This incense burner is shaped like a dragon holding a blossoming lotus in its mouth. It is decorated with 160 creatures, including animals, plants, and human figures. Every part is delicately crafted in detail, showing Baekje’s advanced technique. Baekje used a technique called mercury amalgamation, which creates a shape with mercury and gold and then vaporizes the mercury to leave only gold. This technique was used 1000 years earlier than the West.
The burner represents the state of the art technology Baekje possessed. How was it regarded at its own time? Samguk Sagi, a record of the three ancient Korean kingdoms, described Baekje as simple but not shabby and elegant but not lavish.
여러분은 혹시 아시나요? 약 1600년 전 한국의 고대 역사 속 고구려 고분 벽화에 그려진 문화유산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21세기 올림픽에 등장해 세계인에게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화제 속 주인공은 바로 2018년 봄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폐막식에 등장한 인면조입니다. 평창올림픽에 등장한 인면조는 “사람 얼굴을 한 새”로 한국 고대 역사인 고구려 덕흥리 고분 벽화에 등장합니다. 1600년 동안 고구려 덕흥리 고분 벽화에 잠들어 있던 인면조는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 등장하는 “무용수”들과 함께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과 폐막식에 화려하게 다시 태어났습니다.
인면조는 마치 올림픽 개막식 공연 주연 배우로 초대받은 한국 최고의 스타처럼 무대를 휘젓고 다니며 세계인의 큰 화제를 모으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올림픽 중계방송을 통해 인면조를 본 세계인들은 사람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거대한 새가 기린처럼 긴 목을 가지고 날개를 펄럭이며 등장하자 지금까지 세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의 고대 전통문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고 평가합니다. 사실 평창 동계올림픽에 등장한 인면조는 고구려 덕흥리 고분 벽화 속에서 등장했지만, 한국역사 속에 인면조는 고구려 벽화뿐만 아니라, 백제, 신라, 조선의 문화재 곳곳에서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인면조를 벽화로 남긴 고구려는 어떤 나라였을까요? 한국의 5천년 역사에서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무대로 강력한 힘과 거대한 영토, 수준 높은 문화를 지녔던 고구려는 기원전 37년~668년까지 약 700년간 존재했던 한국의 고대 국가입니다. 무엇보다 한국역사 속 고구려는 1988년 서울 하계 올림픽,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국제화된 한국에게는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의 영어 이름인 KOREA가 한국 역사 속에서 국제적으로 교류가 활발했던 “고려” 의 국호에서 시작되었는데, 고려의 국명이 바로 고구려에서 따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구려의 국명은 고려라고도 불리었는데 고려를 세운 왕인 왕건이 나라를 세울 때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하는 나라라는 의미에서 국호를 고려라 했습니다. 국제사회에 한국의 영어 이름을 대표하는 KOREA의 시작이 된 고구려 그리고 그 고구려인이 21세기 한국의 평창 동계올림픽에 가져다준 놀라운 선물 인면조.
인면조가 전 세계인의 눈과 귀가 집중된 한국의 평창 동계올림픽에 등장한 것은 과연 우연일까요?
Appearance of Korean Cultural Heritage in the PyeongChang Olympics.
Did you know the PyeongChang Olympics made a mythical creature from Goguryeo a global star?
The creature was painted on a wall of a tomb that was created in 408. It was recreated for the Olympics opening and closing ceremonies, drawing international attention. The talk of the town was a human-faced bird, Inmyeonjo in Korean. It was inspired by the mural of Inmyeonjo at Deokheungri Tomb in North Korea.
The over 1600-year-old bird was reborn with dancers, who were also a recreation based on the mural at another Goguryeo tomb of Muyongchong. Inmyeonjo was the biggest Korean star during the 2018 Olympics. Those who saw Inmyeonjo on TV were intrigued by its appearance, with its human face, a giraffe-like long neck, and large wings. Inmyeonjo aroused interest in traditional Korean art and culture. This imaginary bird appeared in other paintings from Goguryeo, Baekje, Silla and even Joseon.
What kind of country was Goguryeo? Goguryeo comprises around 700 years of Korea’s 5000 years of history. It was an ancient Korean kingdom that existed from 37 B.C. to 668. With strong power and an advanced culture, Goguryeo ruled the Northern parts of Korea and a considerable portion of Manchuria. Numerous people around the world heard the name of Korea during the 1988 Summer Olympics in Seoul and the 2018 Winter Olympics in PyeongChang. Most of them probably didn’t know that the English name of Korea originated from the kingdom of Goryeo (918-1392), which took its name from Goguryeo. Goguryeo was also called Goryeo.
Wang Geon, the founder of Goryeo, named his kingdom Goryeo to proclaim its succession to Goguryeo. Goryeo was very international and made its name known to the world. However, Goguryeo was the origin of the name of Korea. Inmyeonjo was also a creation of Goguryeo. A long history and rich cultural heritage are the forces behind Korea’s strong cultural power.
여러분은 혹시 아시나요? 한국역사 속에 동아시아 최고수준의 문명을 이룩한 나라가 있었다는 사실을!
한 나라의 문화적 역량과 수준을 알 수 있는 기준은 시대의 지식을 담는 그릇인 책과 인쇄기술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고대 한국의 천년 왕국 신라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인쇄된 지 300년이 지난 한국역사 속 고려시대는 탁월한 인쇄기술을 통해 중국에 많은 양의 책을 수출한 정도로 아시아 최고수준의 문화 선진국이었습니다.
고려 시대의 역사를 담은 ‘고려사절요’란 책의 기록에 따르면 중국 송나라 황제는 1091년 한 해에 고려에 무려 125종 5200여 권에 이르는 많은 양의 책을 주문합니다. 특히 중국 황제는 고려에 귀중한 책이 많다는 것을 알고 고려에서 출판하는 서적의 목록을 적으면서 책이 모자라는 것이 있다면 베껴써서라도 가져오라고 말했습니다.
고려 시대의 찬란한 문화유산 중에는 오늘날 인류 문명의 보고라 평가받는 세계적인 보물이 있습니다. 바로 국보 32호이자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팔만대장경입니다. 팔만대장경은 고려 시대 불교 경전을 찍기 위해 글자를 새긴 목판으로 목판 수가 약 8만여 개에 달해 ‘팔만대장경’으로 불립니다. 대장경 한 장의 두께가 4㎝임을 고려할 때 8만1352장의 목판을 차곡차곡 쌓았을 때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인 백두산의 2,744m보다 높으며 총 무게는 280톤에 이를 만큼 엄청난 분량입니다. 대장경이 위대한 것은 단지 엄청난 분량 때문만은 아닙니다. 당시 팔만대장경을 만드는 작업과정 하나하나가 오늘날 반도체 칩을 만드는 작업 공정만큼이나 높은 수준의 기술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8만 개에 달하는 엄청난 양의 목판 한장 한장마다 세계 최고수준의 전문가가 같은 능력으로 경판을 새긴 것처럼 수준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팔만대장경은 총 제작 기간 16년, 참여한 고려인이 약 50만 명인 국가적 사업이었습니다. 당시 국가주도로 이 정도 수준의 대장경을 만들 수 있는 나라는 한국의 고려와 중국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불교가 보편적인 시대 문화였던 중세 동아시아에서 고려가 대장경을 만들었다는 의미는 고려가 당시 동아시아 최고수준의 문명에 도달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Palman Daejanggyeong, Heritage of Outstanding Universal Value
Did you know Korea has one of the most comprehensive collections of Buddhist canons in the world?
A country’s cultural level is indicated in its printing technology and books because literature delivers the knowledge of the time. Mugujeonggwang Daedaranigyeong (The Great Dharani Sutra) from Silla is the world’s oldest surviving book printed with wood blocks. Printing technology on the Korean peninsula continued to develop. About 300 years later, Goryeo printed and exported a vast number of books to China.
Goryeo (918-1392) was a leading cultural power. Goryeosa Jeolyo (Concise History of Goryeo) documented that Emperor Zhezong of Song China ordered 5,200 books of 125 kinds from Goryeo in the year of 1091 alone. The emperor recognized the value of Goryeo’s books and ordered his servants to import them and copy them by hand if necessary. Among the most valuable documentary heritage from Goryeo is Palman Daejanggyeong (Tripitaka Koreana), Korean National Treasure #32. It is also inscribed on the UNESCO Memory of the World Register in 2007.
Palman Daejanggyeong, meaning Eighty-thousand Tripitaka, was given the name because over 80,000 wooden printing blocks were used to print the entire collection of Buddhist scriptures. Given that the thickness of each wood block is 1.6 inch, if all of the 81,352 blocks were stacked up, it would be higher than Baekdusan Mountain, the tallest mountain in Korea, rising over 9,000 feet above sea level. It would weigh 280 tons.
However, it is not just the vast quantity that makes Palman Daejanggyeong great. The process of making each block required technology as complicated as producing semiconductor chips today. The entire collection of the great number of blocks were completed to perfection. It was a national project that involved more than 500,000 people for 16 years. Goryeo and Song China were the only countries that could organize this scale of a project for printing Buddhist scriptures. Buddhism was the dominant religion in Middle-age East Asia. Printing of this vast collection of Buddhist scriptures reflects the height of Goryeo’s cultural development.
여러분은 혹시 아시나요? 한국역사 속의 고려 시대에 세계 최고수준의 명품인 ‘청자’를 생산했었다는 사실을!
세계에서 푸른 빛이 나는 자기인 청자를 최초로 만든 나라는 중국입니다. 그런데 청자를 발명한 중국인들조차도 고려에서 만든 청자를 세계 최고수준의 명품으로 인정했으며 고려청자를 서로 갖고 싶어했습니다. 중국 송나라 때 한 학자가 저술한 ‘수중금’이란 책에 고려청자는 세상 사람들이 가장 갖고 싶어하는 세계 제일의 명품이라고 평가했으며, 중국 북송 황제의 한 사신은 ‘고려도경’이란 책에 고려청자는 중국에서 생산된 도자기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명품으로 꼽았습니다. 특히 중국의 유명한 시인 소동파는 천하명품으로 10개를 소개했는데, 그중 2개가 고려에서 만든 것인데 바로 청자와 종이였습니다.
그렇다면 고려청자에는 어떤 신비스러운 매력이 있었기에 당시 세계 최고수준의 도자기를 만들어 전세계에 수출하던 중국조차도 한국의 고려청자를 세계 최고의 명품으로 인정했을까요? 청자는 오늘날의 반도체처럼 최첨단의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에 10세기경에 전 세계에서 청자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중국 송나라와 한국의 고려 두 나라가 유일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고려는 중국으로부터 도자기와 청자를 만드는 기술을 배워 10세기~11세기에 한반도 곳곳에서 청자를 생산했고 12세기 무렵에는 중국의 청자를 넘어서는 독창적인 기술을 창조해 세계 최고수준의 명품 자기인 “상감 청자”를 만들어냈습니다.
상감 청자는 도자기 표면에 다양한 형태의 무늬를 새긴 후 그 부분에 흙을 넣어 문양을 나타내는 기법으로 한국의 고려인들이 세계 최초로 만든 도자기 제작기법입니다. 상감 청자 제작기법을 통해 고려는 전세계 어떤 청자와도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하고 유일한 푸른빛을 발산하는 고려청자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고려청자로는 대한민국 국보 제68호로 지정된 ‘청자상감 운학문 매병’입니다. 몸체가 크고 입이 작은 그릇에 구름과 학 무늬가 새겨진 이 청자를 통해 세계 최고수준의 명품을 생산했던 고려의 찬란한 문화 수준을 엿볼 수 있습니다.
Goryeo Celadon, Highest Quality Pottery
Did you know Korea has the highest quality pottery from the 10th century?
Celadon, jade green pottery, was first made by China. However, even the Chinese coveted Goryeo celadons. In his book, Xiuzhongjin, Song Dynasty writer Taiping Laoren listed Goryeo celadons as the most-desired items in China. An envoy from Song’s emperor wrote in GaoliTujing (Illustrated Travelogue of Goryeo) that Goryeo celadons are as refined as Chinese counterparts. Famous Song Dynasty poet Su Shi included two of Goryeo’s artifacts in the top 10 items in the world. They were Goryeo celadons and bells. China was the major exporter of exquisite pottery. What made the Chinese admire Goryeo celadons?
Celadon required cutting-edge technology to make. China and Goryeo were the only countries that had the technology to make celadons. The people of Goryeo learned pottery-making techniques from China and began producing celadons in the 10th century. By the 12th century, Goryeo produced pottery that matched or exceeded the quality of Chinese pottery.
Goryeo (918-1392) developed a unique technique called the Sanggam Method, which is a method of etching patterns into a surface and adding colored clay. Celadon made with this inlay technique boasted a unique jade-green shade that was incomparable to any other. The most well-known Goryeo celadon is Celadon Prunus Vase with Inlaid Cloud and Crane Design, Korean National Treasure #68. This vase has a wide body and a narrow mouth with inlaid patterns of clouds and cranes. The fineness of this work shows the level of Goryeo’s art.
여러분은 혹시 아시나요? 15세기 그려진 세계지도 중에 가장 탁월한 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한국에서 만들어졌단 사실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지도 이름은 ‘알아야 할 다스려야 할 세계의 모습’이란 뜻으로 조선이 건국된 지 10년이 지난 1402년에 조선 왕의 의지가 실린 국가 주도로 제작된 지도였습니다. 이 지도는 당시 최신의 조선 지도와 중국과 일본에서 발행된 지도를 결합하여 새롭게 만든 세계지도입니다. 무엇보다 신기한 건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유럽보다 약 100년 먼저 아프리카 대륙을 지도에 포함한 세계 최고수준의 지도라는 것입니다.
이 지도에는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를 넘어 인도, 중동과 유럽, 심지어 아프리카까지 포함되어 있으며 아프리카 해안과 나일강의 세부 형태까지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런 정도의 정확성을 가지고 있는 지도는 당시 유럽 및 서양의 어떤 지도에도 존재하지 않았음을 볼 때 당시 조선인들은 유럽인들보다 더 높은 수준의 세계 지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15세기 조선은 어떻게 이런 훌륭한 세계지도를 서양보다 먼저 만들 수 있었을까요? 당시 조선인의 인문 과학 문화 수준이 세계 최고수준이 도달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영국의 사회과학자 조지프 니덤은 한국의 조선 시대 제작된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15세기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지도라고 평가했습니다,
또한 이 지도는 미국에서 발간된 <지도학의 역사(History of Cartography)>시리즈 중 아시아 편의 책 표지로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미국의 국회 도서관과 비르가(Virga)라는 작가가 2008년도에 공저로 펴낸 <지도학, 지도 문명 CARTOGRAPHIA, Mapping Civilization>에는 “서양의 어떤 지도도 이 지도를 이길 수 없다. 이 지도는 새로운 한국을 창조하였다”라 평가합니다.
Gangnido, the oldest Extant Map of the Afro-Eurasia World
Did you know Korea has one of the oldest extant world maps?
Honil Gangni Yeokdae Gukdo Jido (Gangnido for short) is a world map that was drawn in the early 15th century. Its name means “the map of the world to know.” It was created in 1402, ten years after the establishment of Joseon (1392-1910), by deputy prime ministers. It was made by integrating different maps from Korea, China, and Japan. What is surprising is that it included Africa, which is about 100 years earlier than any European maps.
This map includes East Asia, South Asia, Middle East, Europe, and even Africa with the details of African coasts and the Nile. There was no comparable map with such level of comprehensiveness at the time. This map reflects Joseon’s advanced understanding of the world. How was Joseon able to create such an accurate map of the world? It indicates the height of Joseon’s literacy, science, and culture.
British historian Joseph Needham praised Gangnido as the best map of the time. This map was also used for the cover of “the History of Cartography: Cartography in the Traditional East and Southeast Asian Societies,” published by University of Chicago Press. In another book, “Cartographia: Mapping Civilizations,” co-authored by Vincent Virga and the U.S. Library of Congress, the authors evaluation was that there is no map comparable to this map, and it created a new Korea.
여러분은 혹시 한 나라의 왕이 백성을 사랑해서 문자를 창조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나요? 바로 한국역사 속 조선 시대의 왕 세종대왕의 이야기입니다.
세종대왕은 글을 읽고 쓰지 못해 고통받는 가난하고 무지한 백성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당시 귀족과 신하들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며 전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힘든 위대한 사랑을 실천합니다. 바로 어떤 사람이라도 하루면 배울 수 있는 문자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세종대왕이 백성들을 사랑해서 문자를 창조한 이야기는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훈민정음 해례본>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이란 1443년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이 1446년에 발행한 이른바 한글사용방법에 대한 해설서입니다. 이 책엔 사람의 말소리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소리를 적을 수 있는 한글의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창조 개발 원리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특히 당시 신분이 낮고 힘이 없는 사람들의 소통을 위해 문자를 만든 세종대왕의 사랑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글은 도대체 어떤 점이 위대한 것 일가요?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글을 연구한 미국 매릴랜드 대학교 언어학 교수인 사무엘 로버트 램지는 다양한 방송, 언론 인터뷰에서 한글은 소리와 글이 서로 체계적인 연계성을 지닌 과학적인 문자이며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는 세계 어느 문자에서도 찾을 수 없는 위대한 성취이자 기념비적 사건이라고 말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한글이 여성까지 포함해 모든 백성이 글을 깨우쳐야 한다는 세종대왕의 보편주의적 시대정신을 담고 있으며 이런 생각이 지금의 관점에서는 당연하지만, 당시 지배계급의 눈에는 시대착오적이고 위험한 것이었다며 한글이 갖고 있는 인본주의 정신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또한, 그는 한글은 한국의 높은 문화 수준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지만 어느 한 나라를 뛰어넘는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 세계의 선물이라 말했습니다. 예를 들면 한글의 자음인 ‘ㄱ’, ‘ㄴ’, ‘ㄷ’ 등은 실제 발성 기관의 모양을 그대로 본떠 소리와 글이 연관성을 갖고 있지만 영어 알파벳에서 ‘t’와 ‘d’는 발음상 어떤 연관이 있다고 짐작할만한 단서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독일 함부르크 대학교수 Werner Sasse는 서양이 20세기에 들어서 완성한 음운이론을 세종대왕은 그보다 5세기나 앞서 체계화했고 한글은 전통 철학과 과학 이론이 결합한 세계 최고의 문자라 평가했습니다. 영국의 역사가 존맨은 한글은 전세계 모든 문자의 꿈이라고까지 평가했습니다.
Hangeul, the alphabet Created by a Loving King
Did you know the Korean alphabet was created by a king for the people? The king is King Sejong of Joseon (1392-1910).
King Sejong felt sorry for commoners who were suffering due to illiteracy. Despite the objection of the noble class, he decided to create an alphabet that anyone can learn in a day. The story behind King Sejong’s creation of Hangeul is described in the Hunminjeongum Manuscript or Hunminjeongum Haerye in Korean. The manuscript was inscribed on the UNESCO Memory of the World in 1997. The Haerye is a commentary on the Korean alphabet of Hangeul, published in 1446, three years after the invention of Hangeul. It explains how each letter was designed. Due to its scientific design, Hangeul can replicate all available sounds in writing. And it allowed the most vulnerable to express their thought and feelings in writing.
What makes Hangeul special? Dr. Samuel Robert Ramsey, Professor of East Asian linguistics at the University of Maryland, researched Hangeul for over 50 years. In many interviews, he praised Hangeul’s scientific design and described the invention of Hangeul as an unprecedented achievement and monumental development. He particularly values the humanitarianism that is reflected in Hangeul. King Sejong’s idea of educating all people, regardless of gender and class, was seen as dangerous and offensive to the ruling class at the time. He also comments that Hangeul is not only an indicator of Korea’s level of culture, but also a gift to the world because its value goes beyond the border of Korea. Korean consonants ‘ㄱ’ ‘ㄴ’ and ‘ㄷ’ imitate the shape of vocal organs, showing a clear connection between sound and writing. On the other hand, in English, there is no clue to find any connection in pronunciation between consonants ‘d’ and ‘t.’ Dr. Werner Sasse, professor at the University of Hamburg, praises King Sejong for his systemization of phonology, five centuries earlier than the West, and calls Hangeul the best alphabet that combines philosophy and scientific theory. British historian John Man describes Hangeul as the best alphabet that all languages have dreamed of.
여러분은 혹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일어난 최초의 대규모 독립운동에 대해 들어본 적 있나요?
2018년 3월 28일 미국의 유명 언론사인 뉴욕타임즈 웹사이트 1면에 1919년 3.1 운동에 참여했던 한국의 16살 소녀 유관순의 삶이 크게 기사화가 되었습니다. 뉴욕타임즈는 100년 전 3.1 운동에 참여한 16살 한국의 독립운동가 유관순의 업적을 100년 만에 보도했습니다.
그렇다면 16살의 어린 소녀 유관순이 참여한 3.1 운동은 도대체 어떤 운동이었을까요? 1919년에 한국에서 발생한 3.1 운동은 오늘날과 같은 교통과 정보통신연락망도 없던 시절 당시 한국 전체 인구의 1/10 약 200만 명이 참여한 세계 최대 규모의 독립운동이었습니다. 이 운동으로 인해 사상자는 70,418명이며 이 중 7,509명 사망, 15,961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무려 46,948명이 넘는 한국인들이 수감되어 온갖 고문과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렇다면 3.1 운동은 왜 일어났을까요? 5천년 동안 독립된 역사를 지켜온 한국은 일본 제국주의 침략으로 인해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의 식민지배를 경험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한반도의 인적·물적 자원을 수탈하고 한민족의 고유 언어와 문화를 크게 훼손해 정체성을 무너뜨리려 했습니다. 특히 일본 제국주의는 한국이 “스스로 일본의 식민지배를 원한다”라는 거짓된 내용으로 해외에 홍보했습니다. 나라의 독립과 아시아 평화를 원한 한국인들은 일본의 식민지 통치에 저항했습니다.
1919년 3월 1일. 한 청년이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약 5000명의 청년들이 대한 독립 만세를 일제히 외쳤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총과 칼의 공포 속에서도 전국적으로 200만 명의 한국인들이 비폭력 저항운동인 3.1 독립 만세운동에 참가했습니다. 미국 뉴욕타임즈, 프랑스 앙탕트, 영국 모닝포스트, 중국 민국일보 등 세계 유력 언론이 3.1 운동에 대해 보도했습니다. 북경대 잡지 ‘신조’는 “3·1운동은 ‘무기를 갖지 않은 혁명’ ‘불가능한 것을 알고 한 혁명’ ‘순수한 학생혁명’이다. 그들은 혁명 계에 신기원을 열었다고 보도했습니다.
3.1 운동을 통해 한국인들의 독립 의지가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으며 특히 중국의 5.4 운동 아시아 중동지역의 민족운동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3·1운동은 제국주의로 인해 고통받는 수많은 아시아 사람들에게 희망의 빛이었습니다.
March 1st Independence Movement, Hope for Asia
For the Korean people, Dokdo symbolizes full independence and freedom. Dokdo was the first Korean territory taken by Imperial Japan in the early 20th century. It was returned to Korea in 1945, along with Korea’s independence from Japan. Dokdo became a symbol of our independence and freedom
Did you know Korea led one of the largest nationwide independence movements after WWI?
On March 28, 2018, the New York Times homepage covered a story about Korean independence activist, Yu Gwan-sun. She was a 16-year-old girl when she participated in the movement. The newspaper unexpectedly published Yu’s obituary 98 years after her death. Then, what was the March 1st Independence Movement? About two million people, a tenth of the population, took to the streets on March 1, 1919 when there was no advanced means of communication. It resulted in 70,418 casualties, among which 7,509 were killed, 15,961 injured, and 46,948 were arrested and tortured.
Why did so many people participate in the movement? The Korean people lost their national sovereignty for the first time in its 5000 years of history. From 1910 to 1945, Japan colonized Korea, and exploited Korea’s human and material resources suppressing the Korean national identity and culture. Japan also spread a false claim that Koreans welcomed Japanese rule.
Throughout Japan’s occupation of Korea, Koreans tenaciously fought Japan’s colonial rule. On March 1, 1919, a man read out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at Tapgol Park and about 5,000 people cheered for independence. Despite a brutal suppression, many Koreans across the country participated in this nonviolent independence movement. Major international news media, including the New York Times (USA), Entente (France), and the Morning Post (UK) reported this news to the world. And Xin Chao, a Peking University magazine, described this movement as “a revolution without weapons”, “a challenge to achieve the impossible,” and “a pure student movement” that “opened a new era in the history of revolution.” The March 1st Independence Movement made Koreans’ voices heard and influenced the May Fourth Movement in China and other national movements around the world. It brought hope for people who were suffering from the same fate in colonies around.